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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소설를 통해 로마의 황제
네로가 시대의 폭군으로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역사의 기록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합니다.
진짜 네로 황제가 폭군이까요?
한번 네로 황제에 대해 알아보도록 해보죠.
황제 네로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주로 어머니와 임신한 아내를 살해했다거나,
로마에 불을 지르고 불타는 도시를 감사하며
노래를 부른 일화 등을 떠올립니다.
이러한 일화를 바탕으로 네로는 난잡한 난봉꾼,
인민의 심판으로 무너진 폭군,
과대망상적이며 잔인한 황제,
사치스럽고 감정적인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네로를 이렇게 사악한 사름으로
인식하게 될 것까요?
궁금해지기 시작되어 한번 알아보았습니다.
인류에 이런한 이미지를 심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영화와 소설 입니다.
19세기 센키비치의 역사소설 “쿠오 바디스"가
1901년 영화화 된 것으로 시작으로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 흥행했던
영화 “십자가의 징표” 는 당시의 정치적 담론과
함께 네로의 잔악함과 방탕함을 극대화 했다.
이런 미디어에 의해 더욱 가장되고
왜곡되어 네로 하면 폭군이라는
이미지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네로 황제를 폭군을 이미지를 만든 3가지 사건을
바탕으로 한번 알아보고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네로는 사치스러운 주연과 축제를 밤낮없이
열며 방탕한 생활을 즐겼습니다.
로마 제정기 황제가 베푸는 주연은 황제의
미덕과 제국의 부를 나타내는
일종의 정치적 행사 였습니다.
모든 계층이 주연에 참석할 수 있었는데,
이를 통해 황제는 자신의 자비로움과
인민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고 평민들과
노예들은 잠시나마 유력자들의
생활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면 네로는 로바에 불을 지르고
언덕 위에서 불타는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노래를 부른 사이코 였습니다.
화재 당시 네로는 로마이에 없었으며
인근도시 인 안티움에 있었습니다.
오히려 네로는 적극적인 구호 활동을 펼쳤으며
황제의 저택에 임시 숙소를 세우는 한편,
공공 건물을 개방하고 시민들에게 곡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셋번째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죠.
네로는 사치스럽고 지나친
건축사업으로 국고를 낭비했습니다.
네로는 그의 임기 때에 수많은 건축물을 넘겼습니다.
목욕탕, 수로 , 항구 ,곡물 창고 , 식료품 시장 건물,
체육관 , 격투기장 , 전차 경주장 , 신전 등
수 없이 많은 건축물이 세워 졌고,
공공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은 황제였습니다.
그러나 네로의 건설공사는 그의 집권기에만
특별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전 황제들이
꾸준히 진행해오던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건축사업은 경제적 필요성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통치자의 업적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수단으로 여겨졌으며 긍정적인
덕목으로까지 평가 되었습니다.
네로 황제는 왕권 강화를 위해 원로원과 대립하게 되고
68년 3월 원로원 수장인 빈덱스 갈리아의 총독을
붕기를 시작으로, 그해 6월 네로는 자결함으로써 몰락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입니다.
네로를 폭군으로 만들어 그들의 혁명이 정당하되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네로는 미디어와 잘못된 정보에
의해 그는 폭군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네로 황제를 사레를 보면 왜곡된 정보가
어떤 결과가 나오는 가는 보여주는 역사의 예라 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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